




크로우의 장 : 2-6
Feb 9, 2023
C.E. 996 가을
“마지막으로 묻겠다. 크로우는. 어디에. 있지? “
노바의 경비병이 켄지에게 뒤에서 목을 졸린 채 붙잡혀 있고
수백명의 경비병들은 긴장한 손으로 무기를 겨누며 둘을 에워싸고 있다.
붙잡힌 경비병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너… 너는 날 공격할 수 없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이 노바성에서 그
누구도 다, 다치게 할 수 없어, 푸른 불꽃!
네어에서 추방당할때 여왕과 한 서약을 기억하지?
네가 여기서 단 한명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서약의 법칙이 네 목숨과, 정신,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삼켜버릴거야!!! 너, 너도 알고 있잖아 !!! “
온 세상이 푸른 불꽃으로 번쩍였다. 눈 깜짝할 순간, 모든 것은 땅에 쓰러져 모든 생명이 불타버렸다.
“단지 내 무기를 되찾으러 왔을 뿐이다. 모두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
ㅡ 성 홀 내부 ㅡ
검은 여왕은 왕실의 거대한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눈엔 분노와 슬픔의 빛이 서려있다.
기사단의 사령관이자 검은 여왕의 어릴적 가장 친한 친구였던 스텔라가 투구를 왼팔로 든 채로, 여왕의 뒤에 서있다.
“ …켄지가 틀림없습니다. “
그녀의 눈에 슬픔이 조금 더 드리운다. 여왕은 침묵했다.
“ 그는 서약을 어겼습니다. 즉, 여왕님의 힘의 봉인이 해제되는 동안 네어는
더 이상 켄지와 그의 숲을 보호하지 못 할 것 입니다.
그리고 서약의 법칙에 의해… 그는 죽고 말겠죠.
서약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스텔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켄지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그는 전쟁터에서도 항상 이성적인 사람인데…
크로우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그녀를 원하는 걸까요. “
여왕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다.
“.. 그녀는 열쇠이고, 문 그 자체이며,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이란다 스텔라. “
“ 스타레이디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 “
“ 내 불꽃도 나에게 똑같이 말했지. 하지만.. 켄지에게 크로우는
그런 의미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아마도 그에게 삶의 이유를 찾아준 사람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켄지에게 크로우는 그래… 아마 삶의 모든것, 일테지.
나도 그를 잘 알기 때문에.. 알수 있단다. “
검은 여왕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 …푸른 불꽃과의 목숨을 건 싸움은 피할 수 없을거 같구나. “
스텔라는 여왕의 슬픈 표정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듯, 이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조용히 투구를 쓰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왕 폐하. “
여왕의 눈은 창 밖을 떠나지 않았고, 슬픈 기색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고있었다. 눈에는 짙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ㅡ 성 안 훈련장 ㅡ
린과 창을 부딪히는 순간, 회색빛이던 하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새파랗게 반짝였다.
“ 꺄아아아아악! “
나는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소리를 지르고 몸을 웅크렸다.
“ 크로우! “
린은 훈련용 무기를 떨어뜨리고 내 앞으로 달려와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그냥 천둥일 뿐이야. 무서워하지마, 크로우.. “
하지만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세차게 흔들었다.
“… 그래, 나도 알아, 켄지인거. “
나는 그말에 놀라서 린을 올려다 봤다.
그리고는 너무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린에게 되물었다.
“ 켄지를… 켄지를 알아..? “
“ 응. “ 린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 하지만 다시는 널 다치게하거나 조종하지 못 할거야.
여왕님과 내가 있으니까, 무서워하지마. “
“ 하지만…하지만..! 켄지는 이길 수 없어. 린.
몇번이고 시도해봤어
내가 백 명이 되어 달려들어도 상처 하나 못 낼거야.
켄지는 괴물이야… 언제나 침착하고 흔들리지 않아.”
나는 린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 다시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아!! 너와 여왕님이 싸우는것도 원하지 않아..
나는… 린이 걱정 돼.. “
린은 애정어린 눈으로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다정한 나의 크로우.. 그거 알아? 우리 모두는 악몽을 꿔. 하지만 괜찮아.
겁내거나,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크로우의 악몽과 싸우는게 하나도 겁나지 않아.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준 사람은..
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던,
크로우 바로 너니까. “
쏟아져나오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 제발… 제발 그와 싸우지 마, 너는 죽을거야, 린…. 제발.. “
“ 크로우. 내가 정확히 똑같은 상황을 몇번이나 겪었는지 알아? 천 번, 아니 그보다 더 많겠지.
이 세계는 계속 반복되고 있어. 아마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은 나 뿐이겠지.
여왕님과 내가 피 한 방울도 안흘리고 켄지를 무찌를거야. 우리 모두 무사할거고.
매번 똑같이, 우리 이야기는 늘 그렇게 흘러갈거야.
그러니 크로우, 걱정하지마. “
린은 나의 애처로운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 앞에 손바닥을 흔들었다. 린은 이내 웃는다.
“믿기 힘들겠지, 히나(고양이)가 나를 숲 가까이 데려갈 때마다, 수 천 개의 화살이
나를 향해 빗발칠 거라는 것도 알아. 매우 아플거란 것도 알고.
하지만 있지, 크로우… 그래도 난 주저않고 화살비를 마주 할거야.
살을 뚫어버리는 고통도 감수할거야.
왜냐하면, 나는, 살아서 이대로 널 다시 보게 될걸 알고 있으니까. “
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 그 때마다 항상 네가 얼굴도 모르는 나를 구하기 위해 나타나.
수없는 많은 루프 속에서 늘 함께하고, 믿고 의지해왔고, 기다려온 나를
모르는 채로 말이야.
크로우는 항상 내게 고맙다고 말하지만,
내게 모든 것을 마주할 용기를 준 사람이고,
이 끝없는 루프 속에서 나를 진심으로 웃게 해줬어.
나야말로 고맙다는 말을 해야할거 같아.
고마워, 크로우… 항상.
자! 이제 여왕님이 계신 곳으로 가자. 무기를 가져올테니
먼저 복도로 나가있어. 알았지? “
나는 린이 부축해주는 손을 잡고 일어났다.
린은 잠시 나의 눈을 바라보고는.. 나를 꼭 껴안아줬다.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그 따뜻함이 주는 안정감을 느낀다 -
하지만 그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듯, 포옹을 뒤로한 채 린은 자리를 떠났다.
나는.. 멀어지는 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조용히 린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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