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우의 장 : 2-3
Jan 4, 2023
‘빨리 상처를 치료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하지…?’
여전히 나비 소녀의 등에 난 상처에선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때, 예전에 켄지가 블러드스톤을 써서 덫에 다친 사슴을 치료했던 일이 떠올랐다.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남는 블러드스톤이 없는데…’
‘아, 있다!’
손 안에 약을 힘껏 쥐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제 알약을 먹었을 때와 같은 위치에 태양이 걸려 있었다. 약 먹을 시간이 됐다는 건데… 지금 안 먹으면 녹아 버리겠지.
알약 두 알. 하나는 내가, 다른 하나는 켄지가 먹을 약이었다. 하지만 켄지는 살 수 있다… 켄지에겐—
소녀가 고통으로 신음을 흘렸다. 결단을 내려야 해. 하지만 알약 한 알로는 이 소녀를 구할 수 없다. 그때도 켄지가 사슴을 구하느라 알약 두 알을 썼으니까.
‘알약 두 알을 다 이 애한테…?’
선택지는 둘.
내가 사느냐
이 아이를 살리느냐
‘아, 이런 건 싫은데…’
‘내가 살기로 해도 걸릴 게 하나도 없어…’
‘내 목숨이잖아.’
‘근데 왜 이렇게 고르기 어려운 거지?’
‘켄지한테는 죽고 싶다고 그랬잖아. 모든 걸 내려 두고 녹아 없어지고 싶다고. 죽여 달라고 빌었잖아.’
‘그런데도 안 죽고 내가 살지, 사경을 헤매는 저 아이를 살릴지 고민하고 있어.’
‘쟤가 잘못한 거잖아!’
‘쟤 잘못이라니까!’
‘고양이는 그냥 버리고 혼자 전속력으로 도망쳤으면 살 수도 있었어. 저 고양이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 있는 거라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나?’
‘그 선행의 대가를 지금 내가 치러야 한다니…’
‘바보 같아…’
‘우으…’
‘우리 둘 중 하나만 살아야 한다면…’
‘아마…’
‘이 아이 목숨이 더 가치 있겠지.’
‘이유?’
‘나도 몰라.’
‘굳이 이유를 대야 하나?’
‘하, 그래. 이유 하나 있다 치자.’
‘나라면 저 고양이 때문에 희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무엇을 위해서라도 내 목숨을 버리진 않았겠지.’
지금까지 살면서 익힌 건 죽이고, 빼앗고, 끝내는 것이었다. 목숨을 끊고, 숨을 거두는 것. 훔치고, 자르고, 찌르고, 살해하며 배운 것들이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영혼을 조금씩 희생해 왔다. 뭘 위해서 그랬을까? 켄지가 벌이는 바보 같은 성전 때문이었나?
‘그만 생각하자! 시간이 없어! 저 애를 살려야 한다고!’
알약 두 알을 모두 나비 소녀의 입 안에 넣고, 머리를 기울여 그대로 삼키게 했다. 고양이는 하악질하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잠자코 지켜보며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난 소녀 옆에 앉아 내가 내린 결정을 되새겼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봤다.
‘목적도 없이 긴 시간을 살았어.’
‘죄 없는 목숨을 많이도 거뒀지.’
‘내가 사라져도 슬퍼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
‘켄지가 날 찾기는 할까? 눈물은 흘려 줄까?’
‘이 애는 누가 자기를 살렸는지,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힘들게 내린 결정인지 알기는 할까?
‘녹아내려 살덩어리가 된 내 모습을 보고 내 이름, 얼굴, 영혼을 알아주기는 할까?’
눈 위로 쓰러지는 나를 태양 빛이 따스하게 감쌌다. 겁에 질려 있던 고양이가 조심스레 내 곁으로 다가왔다. 고양이는 수포가 올라오는 내 피부와 글썽거리는 내 눈과 끝이 말리며 따뜻한 미소를 짓는 내 입을 알아봤다. 그리곤 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까칠까칠한 코로 내 무릎을 톡 건드리며 다리에 몸을 비볐다.
‘이게 ‘사랑’이란 감정인가?’
형태를 잃으며 떨어져 내리는 손가락이 보이는데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마음이 평온했다.
‘원래… 이런 느낌인 건가?’
고통은 없었다.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긴 채로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구의 품일까? 화염 속으로 사라져 버린 부모님? 마침내 증오를 떨쳐 낸 켄지? 날 구하려는 고양이?
아니면 감사 인사를 하는 나비 소녀?
‘저주보다는 축복에 가깝겠는걸…’
‘죽음이 이렇게 평화롭고 편안한 걸 보면 우릴 네어 시민으로 태어나게 한 여신님은 정말 마음이 따뜻한 분일 거야.’
더는 내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 다리, 등, 어깨, 목.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전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아직 푸른 하늘과 눈으로 덮은 숲과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 떼가 두 눈에 보였다.
…
…
어둠이 내렸다.
…
‘이제 다 끝이구나.’
…
‘드디어…’
…
‘자유로워졌어…’
…
…
…
???
“조금만 버텨.”
…
…
‘나한테 하는 말…?’
뭔가 손에 쥐어지는 게 느껴졌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었다.
???
“이제 기억의 성을 열어 날 받아들여 줘.”
‘무슨…?’
[그렇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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