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우의 장 : 1-1

Nov 27, 2022

C.E. 997년 봄

검은 사슬 갑옷을 입은 병사가 검은 옷을 입은 소녀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소녀는 활짝 웃으며 간단히 검을 쳐 냈다. 손을 떠난 검은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전장을 가로지르고, 소녀는 장갑을 낀 양손에 움켜쥔 양날 재블린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먼저 가 봐.”

재빠르게 움직이는 창날에 병사의 몸은 생명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까마귀를 닮은 소녀의 양손으로 재블린이 돌아왔고, 그 반짝이는 금속 자루엔 소녀의 칠흑빛 코르셋이 비쳤다. 격노가 도는 전장과 소녀, 그 위에서 하늘이 붉게 피를 흘렸다.



모든 걸 눈앞에서 지켜본 나는 검에 묻은 어느 이름 없이 스러진 병사가 남긴 피를 닦아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어디에서든, 특히 이런 곳에서는 품위를 지켜야 하는 법. 검은 옷을 입은 소녀가 자벨린을 닦았고, 내 존재를 알아챘다.



소녀의 자벨린은 마치 적을 쓰러뜨리며 피를 향한 갈증을 키운 것처럼 검붉은색으로 빛났다. 자벨린을 날 향해 겨누며 까마귀처럼 검은 옷의 소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순간, 승천식 때가 떠올랐다. 여왕님의 말씀엔 사랑이 가득 담겼으나 그 깊숙한 곳에 가득 찬 서글픔은 여왕님의 완벽한 미모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이 검은 옷을 입은 소녀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이 아이가 죽으면 누가 곡소리를 내기나 할까? 이 아이의 머리가 땅에 떨어질 때, 이 아이는 웃음을 지을까, 울음을 토해 낼까?

이 모든 난장판이 끝나고 나면 이 아이는 절망할까, 안도할까? 억지로 내 던져진 전투. 죽일 수밖에 없는 적.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우리 백성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백성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악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 상황. 내가 이 아이를 위한 눈물을 흘리기는 할까?

뒤쪽에 선 기사들의 고함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검은 옷을 입은 소녀가 돌진하는 것을 보며 검을 움켜쥐었다. 까마귀처럼 검은 옷을 입은 소녀가 몸을 날려왔다.



빠르다…!

나는…


[반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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